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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리뷰] 술과 인생의 묘미를 알수 있는 영화 ' 어나 더 라운드'
[독자리뷰] 술과 인생의 묘미를 알수 있는 영화 ' 어나 더 라운드'
  • 전진홍 기자
  • 승인 2022.03.25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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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영화 '어나더 라운드' 스틸_출처_네이버영화

[뉴스플릭스] 전진홍 기자 = 독자 영화 리뷰에 채택된 독자 이승우님의 영화 '어나 더 라운드'에 대한 디테일한 리뷰를 담았다.

<어나더 라운드>는 술을 소재로 삼은 영화입니다. 다양한 술들을 취급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면서 개인적으로나 일 적으로나 이 영화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이 작품은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노르웨이 학자의 가설로 시작하는데요. Bar 영업장의 분위기와 에너지를 책임져야하는 당사자로서 항상 고민해왔던 주제이기도 했어요. 적당히 술을 마시면 흥이 나기 시작하고 텐션이 조금 올라왔을 때 다양한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겠다는 바램에서요. 하지만 저의 바램은 일종의 달콤한 유혹이었을 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어요. 때때로 영화 후반부의 캐릭터들처럼 진행이 되더라구요. 영화 후반부에 보여진 만취된 주인공들의 모습들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더라구요. 지금은 양호해졌지만요.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가설로 시작한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게 무엇일까? 술에 관한 실험이 전부인가? 술에 대한 찬가인가? 영화 안의 무기력하고 심지어 허무주의에 봉착되어 있던 인물들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합니다. 주인공 네명 모두 선생님들인데 적당한 취기와 함께 수업의 질이 마치 영화<죽은 시인의 사회> 클래스처럼 변모합니다. 다른이에 비해 좀 더 고독한 삶을 살아온 토미(체육 선생)는 왕따소년의 영웅이 됩니다.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가족사이의 관계도 활기가 찾아오고 사랑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가서는 반대의 입장을 보여줍니다. 술에 매력을 느끼고 삶에도 활력을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중독의 실험으로 돌입하는데요. 결과적으로 주인공 모두를파멸로 향하게 합니다. 그럼 술을 부정하는 영화인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친구 교사가 학교에서 퇴출 위기에 놓였음에도 피터는 유급한 학생에게 시험보기 직전에 술을 권합니다.

그 학생은 항상 불안과 긴장 때문에 시험에 떨어지곤 했는데 술 마신뒤에 시험 문제로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적당히 술을 마시면 괜찮다? 이 전제도 아닌 것같습니다. 주인공 마틴이 술 습관도 철저했던 히틀러 유머를 구사하는 걸 보면요.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술을 소재로 삼아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삶 자체에 관한 영화이며 삶에 대한 태도에 관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영화가 비극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다른 작품들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인데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비극은 진지한 드라마이며 슬픔에 대해 슬픔으로 응시하면서 생기는 마음의 정화 작용입니다. 또한 전통적으로 비극의 동력은 복수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부조리에 대한 응징이거나 원한에 대한 복수 같은 거죠. 희생자와 영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양상은 희극풍에 가까우면서, 이동진 평론가의 평처럼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물론 삶이 희노애락이지만 한 작품을 만들 때에는 각기 주제에 가까운 무드와 형식을 쓰게 되는 법이죠. 

이미지 = 영화 '어나더 라운드' 스틸_출처_네이버영화

그래서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주인공 마틴이 친구 토미의 장례식 장 앞에서 복합적인 여러 층위의 감정들을 춤으로 소화한 장면입니다. 비통하게 느껴질 친구의 죽음 앞에서 춤이라…이러한 불가능한 상황을 가능하게 한 게 무엇일까요? 이 영화의 구성은 대비되는 소재들이 주를 이룹니다. 사랑과 권태, 술의 양가성, 불안과 용기, 청년과 중년, 배움과 가르침, 꿈과 현실, 허무함(무기력)과 열정, 성공과 실패, 우연과 필연, 이별과 만남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정적으로 장례식 (삶과 죽음) 과 졸업식 축제 (끝과 시작) 를 맞닥뜨리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나 해외에서나 이 마지막 춤추는 장면을 말할 때 디오니소스가 떠오른다고 합니다. 사실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 다산과 풍요의 신, 기쁨과 광기 그리고 황홀함과 축제의 신으로 알려져있는데 이것말고도 다양한 별칭이 존재합니다. 

그 중에서 중요한 상징들 중 하나는 긍정과 연극의 신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두 번 태어난 신이라는 점인데요. Dio가 두 번을 뜻하고 nysos가 태어난 자를 뜻하는 데 이는 경계를 넘나드는 신으로 풀이됩니다. 따라서 파괴와 생성, 삶과 죽음, 남성과 여성, 인간과 짐승, 젊은이와 노인, 이성과 광기, 우연과 필연, 허구와 현실 등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징들로 많이 쓰이는데요. 이는 이 영화의 특성과 맥을 같이 합니다. 

갑작스러운 친구 토미의 죽음은 주인공 마틴에게 우연으로 다가오지만 장례식 길에서의 아내와의 재회는 필연처럼 다가옵니다. 토미가 마틴에게 전하는 마지막 호소의 내용은 아내에게 돌아가라고 한 것이죠. 한편으로 토미의 고독한 죽음이 술에 의한 실패한 인생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따돌림 받았던 소년 학생에게는 죽어서도 영원히 기록될 성공한 인생으로 비춰집니다.

이렇게 영화는 고통을 다루는 데 있어 우연과 필연 사이, 절망과 희망사이, 이별과 만남 사이 그리고 실패와 성공사이의 경계들을 순식간에 탈바꿈시킵니다. 비극에 관해 니체는 기독교적 ‘부활’과 디오니소스적 ‘가치전환’을 대립시키는데요. 삶에 대한 고통이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의한 ‘결핍’에서 오는 것이라면 훌륭한 구원자를 기다려야만 하고 희생자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미지 = 영화 '어나더 라운드' 스틸_출처_네이버영화

자기 가책으로 인해 삶을 비난하기시작하면 허무주의에 빠지고 만다고 하죠. 하지만 삶의 ‘과잉’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은 만취를 하나의 활동으로 만드는 것처럼 고통도 긍정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비극은 단지 긍정 그 자체의 복수성, 다수성에서만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에우리피데스의 <바쿠스:디오니소스 의 여신도들> 코러스 합창에서 “신들의 형상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고 예상치 못한 수많은 일들 신의 뜻으로 이루어지네! 우리가 기대했던 일, 이뤄지지 않을 수 있고 기대하지 않았던 일, 신의 뜻으로 이뤄지기도 한다네! 여기서 일어난 일들 또한 모두 신의 뜻이라네”라고 외칩니다. 마지막 장면 중 메즈 미켈슨이 비통함에 잠시 벤치에 앉아 있을 때 이러한 ‘가치전환’이 일어난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인의 삶을 넘어이런 게 삶 자체라고 우린 이렇게 살아가고 있고 삶은 멋진 여정이라고 말이에요. 개인적인 삶만 보는 게 아니라주변의 삶도 관통하기 시작한 지점에서요.

디오니소스의 연극의 속성은 주인공의 마지막 춤추는 장면에서도 빛을발하는데요. 메즈 미켈슨의 실제 전공이었던 무용이 이 영화가 가진 허구의 영역에서도 경계를 넘나들며 이렇게쓰이니 말이에요. 삶은 무대위의 연극이라는 유명한 표현도 있는데 비극에 관한 이러한 인식이라면 왠지 이해될거 같기도 합니다. 영화는 키에르 케고르의 시를 도입부에 인용하는데요. 마지막에 가서 다시 읽혀집니다. 청춘은하나의 꿈이고 사랑은 꿈의 내용이라고 했는데 주인공이 삶 자제를 받아들이면서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꿈이 그려지고 청춘으로 되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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