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재미로 보는 마블 세계관-3 "야수의 본능 깨어나다: 마블 최고의 사냥꾼 '크레이븐' 탄생 비화"

2025-03-12     전진홍 기자

[뉴스플릭스] 전진홍 기자 = 러시아 귀족의 피에서 시작된 전설적인 사냥꾼의 탄생까지, 마블 코믹스의 대표적 안티히어로 '크레이븐 더 헌터'의 모든 것

러시아 귀족에서 무자비한 사냥꾼으로

세르게이 크라비노프(Sergei Kravinoff). 20세기 초 러시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안락한 삶을 살 운명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의 폭풍이 그의 가족을 강타했고, 크라비노프 가문은 모든 것을 잃고 유럽으로 도피해야 했다. 젊은 세르게이는 귀족의 품위 대신 생존의 법칙을 배우며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신체 능력을 보였던 그는 아프리카로 건너가 현지인들에게 사냥 기술을 배우며 자신의 재능을 갈고닦았다. 맨손으로 사자와 맞서 싸우고, 독한 독을 몸에 주입해 내성을 키우는 극한의 훈련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그는 현지 주술사가 제조한 신비한 약초 혼합물을 섭취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에게 초인적인 힘과 스태미나, 그리고 놀라운 감각을 부여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을 '크레이븐 더 헌터'라 칭하며 세계 최고의 사냥꾼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스파이더맨과의 숙명적 만남

크레이븐의 인생을 완전히 바꾼 것은 1964년, 뉴욕에서 활동하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존재에 대한 소식이었다. 당시 크레이븐은 이미 모든 야생 동물을 정복했다고 자부하던 시기였다. 그에게 '스파이더맨'은 궁극의 사냥감으로 보였다.

크레이븐은 스파이더맨을 자신의 트로피로 삼기 위해 뉴욕으로 향했고, 이는 마블 코믹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5호'(1964년)에서 처음 독자들에게 공개되었다. 첫 대결에서 크레이븐은 패배했지만, 이는 두 캐릭터 간의 끝나지 않을 라이벌 관계의 시작에 불과했다.

'크레이븐의 마지막 사냥'—마블 역사상 가장 어두운 이야기

크레이븐과 스파이더맨의 관계가 정점에 달한 것은 1987년 출간된 '크레이븐의 마지막 사냥'(Kraven's Last Hunt) 스토리라인이었다. 이 이야기는 마블 코믹스 역사상 가장 어둡고 심오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노쇠한 크레이븐은 자신의 마지막 위업으로 스파이더맨을 사냥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스파이더맨을 사로잡아 가라앉히고, 그의 정체성을 훔쳐 스스로 '더 나은 스파이더맨'이 되어 범죄와 싸운다. 이 과정에서 크레이븐은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깊이 고뇌하며, 결국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한다. 사냥꾼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만의 명예 코드를 지키며 떠났다.

이 스토리는 마블 빌런의 심리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깊이로 탐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금까지도 마블 코믹스의 걸작으로 꼽힌다.

약초, 마법, 그리고 부활

하지만 마블 세계관에서 죽음은 종종 일시적이다. 크레이븐의 가족, 특히 그의 아들 '아나톨리'는 아버지를 부활시키기 위해 어두운 마법을 사용했다. 결국 크레이븐은 부활했지만, 그 과정은 그를 더욱 비틀어놓았다. 그는 이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존재가 되었고, 자신이 정한 사냥꾼의 명예 코드에 따른 '깨끗한 죽음'을 거부당했다는 분노를 품게 되었다.

최근 코믹스에서 크레이븐은 초자연적 사냥꾼들의 집단을 이끌며 더욱 신비롭고 강력한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오랜 기간 팬들 사이에서 영화화가 기대되던 캐릭터인 크레이븐은 마침내 2024년 자신의 솔로 영화 '크레이븐 더 헌터'로 스크린에 데뷔하게 된다. 배우 애런 테일러-존슨이 맡은 크레이븐은 원작의 깊이 있는 캐릭터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해석을 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4년 개봉예정이었으나 2025년 개봉 예정에 있다.

크레이븐, 왜 80년 넘게 사랑받는가?

단순한 악당을 넘어 복잡한 철학과 명예 코드를 지닌 캐릭터, 크레이븐이 수십 년간 마블 팬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그는 초능력이 아닌 인간의 극한 훈련과 의지로 초인적 경지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또한 그의 캐릭터는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 생존, 명예, 정체성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며 깊이를 더한다.

무엇보다 크레이븐은 자신이 정한 코드를 철저히 지키는 '명예로운 사냥꾼'이라는 점에서 다른 빌런들과 차별화된다. 그는 불공정한 사냥을 거부하고, 자신의 사냥감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모순적 복잡성이 그를 마블 유니버스에서 가장 매력적인 안티히어로 중 하나로 만들었다.

80년 넘는 세월 동안, 크레이븐은 단순한 빌런에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복합적 캐릭터로 진화해왔다. 마블의 전설적인 사냥꾼은 앞으로도 독자들과 관객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