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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신호의 ‘시네마 오디세이’ -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2000)
[칼럼] 오신호의 ‘시네마 오디세이’ -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2000)
  • 영화 칼럼니스트 오신호
  • 승인 2022.01.0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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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영화 '하나 그리고 둘' 메인 포스터

[뉴스플릭스]  2022년 1월 6일 대만의 거장 에드워드 양의 장편 데뷔작인 <해탄적일천>(1983)이 국내 최초로 개봉되었다. <해탄적일천>은 왕가위의 대부분의 영화들을 촬영한 크리스토퍼 도일의 첫 영화이기도 하다. <해탄적일천>을 본 관객들이라면 아마도 에드워드 양의 다른 영화가 궁금해질 것이다. 그래서 에드워드 양의 유작이자 걸작인 <하나 그리고 둘>(2000)을 소개해본다.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하나 그리고 둘>은 2016년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리스트에서 당당히 8위에 랭크되었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대만의 한 중산층 가족의 이야기이다. 처남 아디의 결혼식날 장모가 쓰러지고 난 이후 가장인 NJ를 중심으로 부인인 민민, 아들 양양, 딸 팅팅으로 이루어진 네 식구가 그들 각자의 시간 속에 삶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다시 함께 모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NJ는 30년만에 첫사랑인 셰리를 다시 만나고 민민은 어머니가 코마 상태에 빠지자 삶에 대한 회의를 느껴 절로 떠나고 팅팅은 사랑과 이별을 경험하며 양양은 한 소녀를 좋아하게 되며 점점 삶에 눈을 떠간다.

이미지 =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스틸 / 출처_네이버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은 언뜻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처럼 보일 것이다. 이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이 영화의 놀라운 편집이다. 이 영화는 영화에서 편집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새삼 일깨워주는데 그런 측면에서 최상의 사례 중의 하나라고 할 만하다. 만약 이 영화에서 네 가족의 일상을 단순하게 각각 병렬로 순차적으로 쭉 이어서 보여줬다면 지금과 같은 복합적인 감흥을 자아내게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에드워드 양은 이 영화에서 대단히 영리한 서사 전략을 썼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영화에서 네 명의 가족은 한 인간의 다양한 연령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량이 많지 않기는 하지만 민민의 어머니와 처남 아디와 그의 부인인 샤오얀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까지 고려하면 이 영화에서는 한 인간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모든 시간을 각 연령대를 대표하는 극 중 인물을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해놓았다. 그리고 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인물의 시간들은 누구나 동일하게 경험하는 삶의 반복 속에서 다시 겹쳐지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키면서 삶의 순환성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만한 장면이 있다. NJ가 일본에서 첫사랑인 셰리와 손을 잡고 걸어갈 때 NJ의 딸인 팅팅도 대만에서 남자 친구인 패티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는데, 이때 팅팅이 나오는 화면 위로 NJ가 셰리에게 과거에 그들이 팅팅과 패티와 똑같은 만남을 가졌음을 이야기하는 대화가 중첩된다. 이를 통해 에드워드 양은 NJ의 과거가 곧 팅팅의 현재이며 삶이 반복되고 있음을 탁월하게 시각화한다. 그리고 NJ가 셰리를 초등학교 시절부터 좋아했다는 대화 내용은 한 소녀를 좋아하게 된 양양의 에피소드와 연결된다.

인물들간의 상호 작용뿐만이 아니라 자연과 사물도 각 에피소드에서 상호 작용을 하면서 반복되어 등장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아디의 결혼식 피로연의 장식품으로 등장한 풍선은 양양이 그를 괴롭히던 소녀들에게 복수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양양의 학교에서는 콘돔으로 오인된다. 양양이 수업 시간에 보던 영상에서 나오는 구름은 다음 쇼트인 팅팅의 에피소드에서 세찬 비로 바뀌고 이후 NJ가 일본에서 대만으로 돌아올 때 브리지 역할을 하는 신비한 구름으로 다시 등장한다. 이러한 이미지의 연쇄를 통해 자연과 사물의 다양한 결을 보여주는 게 가능한 것이 바로 정교한 편집 때문이다. 팅팅의 옆집 친구인 리리가 어떤 사실을 알고 절규하는 목소리가 아디가 병원에 있을 때 태어난 아기의 울음 소리로 바뀌는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삶의 비극적인 순간과 행복한 순간이 사운드를 매개로 매끄럽게 연결되기도 한다.

이미지 =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스틸 / 출처_네이버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은 대단히 음악적인 영화이다. 먼저 단순한 차원에서 보자면 극 중에 등장인물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리리는 첼로를 연주하고 팅팅과 NJ가 사업상 만나게 된 오타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팅팅과 패티가 함께 연주회에서 음악을 듣는 모습도 나온다.(이 연주회 장면에서는 에드워드 양과 감독의 부인이자 이 영화의 음악 감독인 카일리 펑도 출연한다.) 그리고 음악은 서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NJ와 오타가 차 안에서 음악에 관한 대화를 나눈 뒤 둘은 연주 공간이 포함된 호프집으로 이동한다. 그 곳에서 오타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듣고 NJ는 깊은 상념에 빠져들고 사무실로 돌아가 셰리에게 전화를 하고 그것은 NJ와 셰리가 도쿄에서 재회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 영화와 음악과의 관련성을 보다 심오한 차원에서 들여다보기 위해서 이 영화의 제목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A One and A Two...>인데 에드워드 양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인생은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재즈 선율과 같다"라고 이야기하며 뮤지션들이 즉흥 연주를 시작하기 전 리듬을 세는 말에서 영감을 얻어서 이 제목을 지었다고 한 적이 있다. 이 영화의 제목과 어울리게 실제로 이 영화는 음악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이 영화의 한 쇼트 한 쇼트는 악보에서의 음표가 될 수 있고 그렇게 보면 이 영화를 보는 행위는 연주되고 있는 음악을 듣는 행위와 유사한 것이 된다. 단순히 쇼트를 이어붙인다고 해서 그 쇼트의 연쇄가 음악적이라고 한다면 그건 억지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 그리고 둘>은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정교하게 설계가 되어 있는 한 편의 음악이다.

결혼식에서 시작해서 장례식에서 끝나고 마치 거대한 벽화를 그리는 것처럼 다양한 인물들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전체 구성은 교향곡을 떠올리게 하며 개별 쇼트들은 자율성을 갖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치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영화는 주로 NJ와 민민, 팅팅, 양양의 일상을 평행적으로 보여주는데 각 개인의 삶은 다른 사람의 삶과 별 상관이 없어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합쳐졌다가 다시 나눠져서 진행되기를 반복한다. 그런 가운데 각자의 일상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또 다른 서사의 갈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식의 편집 방식이 마치 즉흥적으로 연주를 주고 받는 가운데 그러한 흐름이 모여서 하나의 재즈곡이 되는 것과 닮아있다. 요컨대 <하나 그리고 둘>은 한 편의 교향곡이자 동시에 에드워드 양의 말마따나 재즈이기도한 것이다.

이미지 =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스틸<br>
이미지 =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스틸 / 출처_네이버 영화

이 영화에서 막내인 양양은 아버지인 NJ에게 왜 사람은 반쪽 자리의 진실밖에 못 보냐고 질문을 던지고 그 이후로 NJ가 준 카메라를 가지고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기 시작한다. 양양의 질문의 핵심은 자기가 보는 것을 타인이 보지 못할 때가 있고 마찬가지로 타인은 보는데 자기가 못 보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자신의 뒷모습을 보기 힘들기 때문에 양양은 대신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어서 보여주고 싶어한다.

양양의 이러한 행동은 영화의 핵심적인 주제를 전달하고 한편으로는 이 영화의 관람법을 넌지시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평소에 볼 수 없는 우리의 뒷모습을 보기 위해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쇼트 단위로 제시되는 삶의 조각들을 마치 퍼즐을 맞춰보듯이 각자의 논리로 이어붙이면서 다양한 의미들을 파악하고 발견해갈 수 있는 것이다. 퍼즐을 맞춰가다가 보면 없는 조각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애초에 완벽하게 퍼즐이 맞춰지도록 구성되어 있지 않다. 가령 팅팅의 옆집 친구인 리리의 집의 사연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일정 부분 미스터리로 남는다. 몇 가지 단서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 속에서 팅팅과 패티가 길거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행인이 그들이 싸우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관객은 사실 그들이 싸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간단한 장면을 통해 에드워드 양은 삶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에드워드 양이 미완성된 퍼즐의 형태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반쪽 자리의 진실만 볼 수 있는 현실에서 이 영화가 나머지 반쪽을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이끌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 반쪽을 보려고 노력할지라도 그것을 전부 파악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관객이 직접 영화를 통해 경험해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뒷모습’에 대한 시각화는 미쟝센의 차원에서도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 영화에는 유난히 유리나 거울에 반사되는 이미지를 활용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처음에는 실체라고 파악되었던 것이 카메라가 움직이거나 인물이 움직이면 사실 그것이 유리에 반사된 이미지였음을 보여주는 쇼트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미쟝센을 통해 에드워드 양은 모던한 대만이나 일본의 건축적인 풍경을 제시하는 한편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 이면에 다른 것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효과적으로 암시한다. 거울을 통해서는 직접적으로 인물의 뒷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만큼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형식 속에서 삶의 잔잔한 소용돌이를 겪어내는 한 가족의 일상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는 드물다. 이 영화 속에서 패티는 팅팅에게 영화를 통해 2배의 삶을 경험하기 때문에 인간의 수명이 3배로 늘어났다고 말한다. 이 대사를 통해 에드워드 양 자신은 <하나 그리고 둘>이 인간의 수명을 3배로 늘리는 영화가 될 수 있기를 소망했을지 모른다. 놀랍게도 그의 소망은 이루어졌으며 이제 우리는 수명을 3배로 늘릴 수 있는 선택만 하면 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 그리고 둘>을 통해 수명이 3배로 늘어나는 경험을 꼭 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글/영화 칼럼니스트 오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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