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플릭스] 김영광 기자 = 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 조현재) 소마미술관은 9월 15일부터 10월 15일까지 이채영 작가의 개인전 ‘이해의 자리’를 개최한다.
소마미술관에서는 매년 드로잉센터 작가공모를 통해 참신하고 역량 있는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있으며, 공모전에 최종 선정된 작가를 ‘Into Drawing’이라는 정례 전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이채영 작가는 2022년 선정된 3명의 작가 중 첫 번째 작가로, 이번 전시에서 보편적인 평면 제작방식을 통해 현대적 드로잉의 내적으로 확장된 의미를 담아낸 작품들을 선보이고자 한다.
‘사이의 풍경’
이채영의 풍경화는 지극히 평범하고 전통적인 기법의 회화다. 새로울 것 없어 보이고, 일상적인 외곽 도시의 적막한 모습이 재현(再現)된 것 같은 그림에 무언가 다른 상징적인 의미가 있음을 글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제부터 잔잔한 풍경 속에 감춰진 그림을 읽는 재미와 그 속에 담겨진 은유(Metaphor)를 설명해 감상자들의 이해를 돕기로 하겠다.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2015)는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 apocalypse) 장르의 대표적인 영화다. 기후 이상과 핵전쟁으로 세계가 멸망하고 그 이후의 인간들의 생존, 파괴된 도시, 풀 한포기 발견하기 어려운 척박한 환경들이 절망감을 넘어 절박함으로 승화되는 미학이 살아 숨 쉬는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텅 빈 공기’(2021)는 매드맥스적인 절망 공간에서 조금은 벗어나 인간의 흔적은 남아있지만, 여전히 삭막하고 잡초가 무성한 들판에 텅 빈 건물들과 마주하게 되는 작품이다. 절망이 지나가고 적막이 펼쳐놓은, 그리고 빈자리가 그려낸 기가 막힌 여백의 흔적이다. 작가 이채영은 매의 눈으로 그 순간을 포착하고 화폭으로 재연(再演)했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풍경화의 기본적인 구도인 근경, 중경, 원경에 그림 그릴 소재들을 감상자가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게 배치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가장 주목받을 근경에 빗물의 얼룩이나 페인트가 벗겨지고 있는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오히려 무엇인가 메시지를 던지려는 의도로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이 과하지 않게 절제돼 있으나, 작가의 시선과 의도는 명확하다. 마치 사진비평가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 ‘밝은 방’에 나오는 ‘푼크툼’(Punctum) 효과에 견줄 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같은 풍경 중에 개인적인 경험에서 오는 자기가 강조하고 싶은 현상을 과하지 않게 부각시키는 절제된 시선이 이채영 풍경화의 첫 번째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자연과 여백’에 관한 이야기인데, 작가는 최근에 나무와 낙엽, 잡초와 연못, 물에 비친 산 등 자연을 소재로 작업하고 있다. 이 또한 작가의 시선을 끄는 사소한 소재에 관한 비범한 접근으로, 다른 작가들과는 또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무난한 구도에 동네 언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작가 자신의 타고난 감수성과 정서를 조형적인 표현으로 연결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정서와 시선은 후미진 공간을 향하며 허전하고 쓸쓸하기까지 하다. 그 쓸쓸한 풍경은 어느새 자신과 만나게 되고, 거기서 묘한 동질감에 위로와 안식을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자연은 위로이고, 여백은 공허함이다.
세 번째는 ‘건축적인 구조와 빈곳의 조화’다. 작가가 그림의 소재로 선택한 건축물들은 임시 건물 형식의 공장이나 오래된 주택들이다. 서울의 외곽 도시나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가건물은 실용적이고 경제적이긴 하지만, 외관의 형태가 삭막하고 도식적이다. 이런 분위기는 들판과 조화를 이루고 작가의 시선은 그 순간을 채집한다. 여기에는 조형적으로 건축적, 구조적인 구도가 존재하고 모든 인간들은 재앙으로 사라진 듯한 디스토피아(Dystopia) 풍경이 연출된다. 여기에 작가만의 시선이 만들어낸 감수성이 더해져서 작가의 평범하고 사소한 풍경화가 인상적이고 독창적인 존재감을 뿜어낸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과거의 작품들(2015~2018)에서 보여진 ‘지독하게 많이 그리기’ 경향이 은연중에 나올 수 있다는 것, 힘을 빼고 집중하기, 자연의 위로와 여백의 공허가 자연스럽게 표현돼야 할 것이다.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드로잉이라고 해서 ‘좋은 작품’이라는 증명이나 담보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재를 지극히 평범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도 얼마든지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좋은 작품은 어느 누구도 가지 않은 길로 아무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창작물이 아니다. 아마도 좋은 작품은 너무 멀지않고 우리 주변에 같이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혼돈과 난해함의 현대미술 속에서 작가 이채영의 소박한 풍경화가 더욱 돋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소마미술관은 2006년부터 드로잉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꾸준히 드로잉을 주제로 한 정례 전시를 진행해왔다.
이번 전시는 소마미술관 드로잉센터 작가공모를 통해 선정된 참신하고 역량 있는 신진작가의 보편적인 평면 제작방식을 통해 현대적 드로잉의 내적으로 확장된 의미를 담아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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